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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의 역사 요약_ 자세한 내용은 위쪽 카테고리를 클릭하세요.

 

1. 서양의 발달사

B.C1894년 당시 구라파의 헤브라이(Hebrai)족 족장이 죄인을 벌할 때 두발을 다 밀어 삭발하게 하여 그 두발이 다시 다 자랄 때까지 죄를 반성하게 하였다는 것엣 이용의 유래를 찾는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두발을 자르거나 숱을 치는데 금, 은, 동으로 면도칼을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그리스에서는 이발사의 업무에 대해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없으나, 이발사는 고정된 장소가 아닌 곳에서 고객을 의자에 앉혀 놓고 두발을 잘랐다. 두발을 자르기 위해 목둘레에 천을 두르고 큰 가위로 층이 나게 잘랐다. 로마 시대부터(B.C 30년) 이발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때부터 이용원은 사람을 만나고 정보를 공유하며 사무를 처리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A.D 7세기에는 두피의 탈모를 방지하고 유지하기 위한 치료법이 연구되었다. 중세로 넘어오면서 천주교의 주교나 수도원 원장은 법률에 의해 주로 짧은 두발을 하였으며, 교권에 복종하는 의미로 삭발을 하였고 예배를 드리기 전 청결한 모습을 위해 매일 아침 두발과 턱수염을 잘랐다. 또한, 가는 두발과 대머리에 관심을 갖고 두발이 자라나는 비법에 대해 연구했으며, 두발 속에 있는 이를 퇴치하기 위해 헤어브러시를 만들었다. 중세 시대에는 이발사가 외과 의사의 역할도 했다. 크고 작은 전쟁을 치르면서 두부에 부상을 입거나 상처가 낫을 때 두발을 삭발하고 치료해 주는 외과 의사와 이용사의 직분을 겸했다.

 

이용사의 영역을 보면 간단한 수술과 상처 치료, 두발 자르기, 수염 다듬기와 자르기였으며, 근대에 이를 때까지 서양의 이용업은 외과 의사와 이용사의 두 가지영역을 인정 받아왔다. 1804년에 장 바버(Jean Barber)가 외과와 이용을 완전히 분리시키고 세계 최초로 이용원을 개설하였다. 그 후로 이용원을 장 바버의 이름을 따서 바버 숍 이라고 하고, 이용원과 외과병원에서 사용하던 청(정맥), 홍(동맥), 백(붕대)의 사인볼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용원에서 사용하고 있다. 1871년에 프랑스의 기계 제작 회사인 바리캉 마르(Barriquand et Marre) 제작소에서 바리캉을 발명하였다. 바리캉의 발명으로 세계의 모든 이용원은 더욱 발전되었다.

 

2. 동양의 발달사

중국의 이용의 시작은 순치원년(順治元年)에 청(淸)은 항복한 한인(漢人)들에게 복종의 증거로 청의 머리 모양인 변발(?髮:치발)을 할 것을 선포했다. 한인들의 저항이 심했는데 그 당시 나온 유명한 말이 “목을 남기면 머리털을 남기지 말고, 머리털을 남기면 머리를 남기지 말라.” 라는 공포의 포고령으로 이때 머리털을 자르는 이발사가 가장 성행한 업종의 하나가 되었다. 일본은 조선과 청나라보다 먼저 두발 양식이 변화했다. 1860년경 요코하마에 정박한 포르투갈 선원 이용사로부터 삼본정길(杉本貞吉) 등이 서구의 이용 기술을 받아들여 일본의 이용이 시작되었다.

 

일본에서도 1871년에 권발령(卷髮令)이 내려졌으나 정부가 강제가 아닌 계몽을 통하여 단발을 유도해서 효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천황의 단발 파급 효과가 컸다. 1869년에 긴자(銀座)에 최초의 이용원이 생겼고, 1889년에는 90%가 단발을 했다. 조선의 단발령은 고종 32년 일본의 강요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3. 한국의 발달사

1895년 12월 30일 새벽에 일본군은 궁을 무력으로 포위하고 고종에게 강제로 단발을 강요함으로 실록에 “짐이 신민에 앞서 두발(頭髮)을 먼저 자르겠다.” 탄식하며 정병하에게 명하여 고종의 두발을 자르게 하고 유길준에게 세자의 두발을 자르게 하였다.

 

그 후 대신들의 두발도 강제로 자르고 전국에 단발령을 내렸다. 효의 사상을 중요하게 여긴 조선인들은 단발령에 전국적으로 반발과 저항을 했으나,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안종호가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이용원을 광화문 부근에 개설했다.

 

1923년 일제시대 당시 만치 야마모도라는 일본인이 주동이 되어 이용기술을 최초로 강습화 하였으며, 그 해 가을에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국가가 시행하는 이용사 자격시험을 실시하게 되었다. 시험 출제는 당시 의학 박사인 주방주씨의 저서인 ‘위생독본’이란 책에서 출제되었으며 생리해부학, 소독법, 전염병학, 면접시험, 실기시험 등을 실시하였다.

 

1961년 12월 5일 이용사, 미용사법이 제정 공포 되어 이?미용이 활성화되었으며, 1986년 5월 10일 공중위생법이 공포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1895년 이후부터 1970년대 까지 이용이 미용보다 활성화되다 쇠퇴기를 맞이하게 되어 위축되었으나 2000년부터 이용원을 밖에서도 안이 보이도록 홍보하면서, 이용에 다시 옛 영화를 찾기 위에 노력했다.

 

2013년부터는 국가자격검정 실기시험 모델이 사람에서 마네킹으로 바뀌면서 학생과 청년들이 이용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로 인해 젊은이들이 바버 숍을 창업하면서 이용원이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출처:2016년 이용분야 NCS 학습모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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